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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일반자료마당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14> 이팝나무

by 풀나무사랑 2014. 6. 8.

박상진의 우리 우리 나무 <14> 이팝나무

 
[중앙일보] 입력 2014.05.17(토)

 

입하 무렵에 흰 쌀밥같은 꽃 … '많이 피면 풍년' 농사 점치기도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14> 이팝나무.jpg
1 전북 진안 마령초등학교 아기사리 이팝나무.
2 가까이서 본 이팝나무 꽃.
3 이팝나무 열매.
 
 
5월은 아이들 눈망울처럼 해맑고 싱그럽다. 갓 나온 연초록 새잎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한다. 어린이날을 조금 지나 봄날이 더욱 익어가면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하얀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이팝나무다.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뜸이 잘든 밥알 같이 생겼다. 가지 끝마다 원뿔모양 꽃차례를 이루어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배고픔에 시달려온 옛 사람들의 눈에는 이팝나무 꽃 모습이 수북한 흰 쌀밥 한 그릇을 그대로 닮아 보였다. 그래서 쌀밥의 다른 이름, 이밥을 붙여 ‘이밥나무’라 하다가 이팝나무가 됐다. 이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꽃피는 시기가 대체로 양력 5월 5, 6일께인 입하(立夏) 무렵이어서 ‘입하 때 핀다’는 의미로 입하나무로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북 일부 지방에서는 ‘입하목’으로도 부른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연을 가진 이팝나무를 찾아가 본다. 전북 진안 마이산 뒤 마령초등학교 교문 좌우에는 이팝나무 고목 몇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아기사리’라는 아이들의 무덤 터다. 옛날 마령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죽으면 원래 야트막한 동구 밖 야산이었던 이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 배불리 먹이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로 시달리다가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가슴앓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들의 죽음을 묻고 돌아서는 부모들은 한 그루 두 그루 이팝나무를 갖다 심기 시작했다. 작은 영혼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이밥’이 달리는 이팝나무 숲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개화의 바람을 타고 초등학교가 들어올 즈음, 이팝나무 아기사리는 학교 부지로 편입된다. 슬픈 기억을 몸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이팝나무들은 이때 대부분 사라지고 몇 그루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천연기념물이란 이름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팝나무는 키가 20~30m에 둘레가 두세 아름을 훌쩍 넘기는 큰 나무로 자란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가지를 넓게 펼치며 오래 살기에 마을 앞 당산나무로 흔히 심었다. 또 꽃피는 상태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습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이팝나무는 꽃이 많이 피고 오래가면 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뜻하니 당연히 풍년이고 반대의 경우는 흉년이 든다. 이런 나무를 우리는 기상목, 혹은 천기목(天氣木)이라 하여 다가올 날씨를 예보하는 지표나무로 삼았다.

 사람들이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등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다. 가난하고 어렵던 세월을 극복하고 오늘의 풍요를 이룬 우리의 상징 나무로서 점점 더 각광받는 것 같다.
 
 이팝나무의 분포 중심지는 우리나라다. 일본과 중국에도 자라기는 하지만 잘 만날 수 없어서 그들은 ‘국가Ⅱ급 보호식물’로 취급하며 세계적으로도 희귀식물에 들어간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 7곳을 포함하여 고목나무만 100여 그루가 넘는다. 자라는 지역은 포항-대구-고창을 잇는 선의 남쪽 및 서해안으로는 당진을 거쳐 북한의 옹진반도에 걸친 한반도의 중남부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지금은 궁궐과 청계천 등 중북부 지방에도 잘 자라고 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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