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8> 매화나무
[중앙일보] 입력 2014.03.15 00:34 / 수정 2014.03.15 00:41남명매·선암매·고불매 … 선비·스님들 수백년 벗 삼아 온 고목 매화
오래된 고목 매화(古梅)는 젊은 매화보다 꽃이 늦게 핀다. 대체로 3월 중순에 고매가 피기 시작한다. 옛 선비들이 눈발이 흩날리는 이른 봄날 나귀 등에 얹혀 고매 찾아가기를 했듯, 오늘날의 매화 매니어들은 지금쯤 탐매(探梅) 일정 잡기에 여념이 없다.
유명한 고매는 대부분 선비들의 옛집과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절에서 수백 년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선비매화의 대표는 경남 산청 단속사지의 조선 초 문신 강회백(1357~1402)이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 그리고 이곳에서 약 8㎞ 떨어진 남사마을에 고려 말 문신 하즙(1303~1380)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다. 둘 다 원줄기는 죽어버리고 밑둥치에 곁가지가 나와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쉬운 대로 고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산천재(山天齋)에는 조선 중기의 학자 조식(1501~1572)이 심었다는 남명매(南冥梅)가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스님들이 아끼고 가꾸어온 매화로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 등이 있다. 남쪽의 웬만한 절에는 고매 한두 그루가 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화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품격 높은 동양의 꽃이다. 중국의 쓰촨성이 고향인 매화가 처음 사람과 맺은 인연은 꽃이 아니라 열매였다. 청동기 시대 옛 사람들은 소금과 함께 식초를 만드는 원료로서 매실을 이용했다. 중국고전 『시경』의 ‘국풍’ 편에는 ‘매실따기(<647D>有梅)’란 이름으로 꽃이 아니라 열매부터 먼저 등장한다.
매화가 꽃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한무제(기원전 141∼87) 때 궁궐에 심으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매화는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소재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비교적 이르다. 고구려 대무신왕 24년(41)에 첫 기록을 찾을 수 있고, 『삼국유사』에는 ‘모랑의 집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네’라는 시가 있다. 매화는 중국을 떠나 우리 땅으로 건너오면서 몸만 달랑 온 것이 아니다. 꽃과 열매로 사람과 맺어둔 소중한 인연도 고스란히 함께 갖고 왔다.
하지만 매화가 널리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까지 매화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매화는 서서히 선비들의 글 속에 녹아 들어간다. 그래도 매화가 정말 활짝 핀 시기는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다. 난초·국화·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의 첫머리에 꼽혔고, 세한삼우(歲寒三友)에는 소나무·대나무와 함께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문화이고 멋이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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