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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한국 사회… 권위주의에 대한 분노가 이념·도덕 다 삼켰다

by 풀나무사랑 2024. 4. 12.

달라진 한국 사회… 권위주의에 대한 분노가 이념·도덕 다 삼켰다

입력2024.04.12. 오전 5:17 
 
수정2024.04.12. 오전 9:12
학자들이 본 총선의 의미

그래픽=이철원
“분노가 도덕을 이겼다.” 야당이 초유의 압승을 거둔 4·10 총선의 결과를 본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는 11일 본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독선적 정치에 대한 분노가 대단히 컸기 때문에 도덕성 논란이 일어난 야당 후보들마저 당선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번 총선 결과에서 한국 사회의 ‘모럴(도덕)의 추락’ ‘반(反)권위주의 성향의 확산’ ‘주류 세력의 변화 조짐’ 등의 큰 변화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기존 보수 이념을 고집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보수’를 아우르지 못한다면 보수 정당의 축소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정부에 대한 분노, 후보의 도덕성 문제 넘어서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도덕성의 붕괴는 매우 위태로운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포함해 각종 위선과 막말이 드러난 사람들이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돼 버린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의 통상적 상식의 수준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가는 상황은 한국 사회를 아노미(무규범 상태)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윤 교수는 “그 책임에서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로 일관한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이대생 성상납’ 발언의 김준혁 후보가 나온 수원정 선거구는 무효표가 4696표나 됐는데, 이들은 김 후보의 과거 발언에 실망했으면서도 끝까지 여당을 찍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국민회의 비대위원장이 ‘범죄자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했지만 “맞는 말인데도 소구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송호근 교수는 “대단히 의아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것을 ‘도덕성의 붕괴’로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30대부터 50대까지의 유권자들이 비도덕적인 것을 옹호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집권층에 대한 반발이 이들의 마음속에서 더 컸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정부·여당은 예민하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도 못했고, 분노를 수용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정권 심판론이라는 회오리바람이 부는 앞에서 도덕성 문제는 ‘잔가지’쯤으로 여겨져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번 총선이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지역 선거가 아닌 전국 선거로 치러진 요인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도덕성이나 막말을 포함해 지역구의 문제가 국가 차원의 정치나 중앙당의 판단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보수 진보 이념보다 ‘반(反)권위주의’ 성향의 확산

심지연 교수는 “사실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인 것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엔 사람들이 정부·여당을 ‘더 큰 권위주의’라고 느꼈던 것”이라고 했다. 과거 경제성장기에 국민의 삶이 나아졌을 때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도 용인했지만 지금처럼 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그걸 바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윤평중 교수는 “지금의 50대까지도 ‘선진국민’이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데,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 항의 구호를 외친 사람의 입을 막는 ‘입틀막’이나 ‘대파 소동’을 보고 그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갖겠는가”라고 했다. 현 정부가 외교안보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탈원전을 되돌리는 등 업적을 이뤘음에도 이런 국민적인 반감에 묻혀 버렸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가장 싫어하는 것이 ‘권력자의 오만’이라는 국민 의식의 변화를 대통령과 정부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추 무너져... 자유주의적 보수의 이탈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기존 균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원호 교수는 “최근 치러진 총선들은 보수 정당의 지지 기반이 계속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고 했다. 한국 보수세력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날개가 규제 완화를 바라는 ‘자유주의적 보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 2016년쯤이고 그게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2022년 대선에선 이들이 다시 윤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이번에 다시 떨어져 나간 것”이라며 “여당 입장에선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아우를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호근 교수는 “지금의 30대에서 50대에 해당하는 세대는 기본적으로 진보 쪽으로 신념화가 이뤄진 세대”라며 “경제성장의 혜택을 특권층이 독점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을 끌어안지 못한 것이 여당 패배의 큰 요인”이라고 했다. 이어 “특검법을 거부하고 정치적 복수에 집착하는 듯한 대통령의 꽉 막힌 모습 앞에서 이들이 지닌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세대가 모두 진보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됐다기보다는, 대통령과 정부가 이들이 진보 쪽으로 쏠리도록 통치를 했다는 것이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만들어 온 두 가지는 1948년의 정부 수립과 1987년의 민주화였는데, 이번 선거에서 ‘48년 체제’와 ‘87년 체제’의 중요한 이념이 다 무너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48년 체제’는 보수가 국가를 이끄는 세력이 됐고 ‘87년 체제’는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타협하되 공산주의 세력을 배제했던 것인데, 이번 선거로 “종북 세력이 비례대표로 들어오게 돼 이것이 무너졌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진보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사실상 행정권력을 무력화할 것이고, 사법부도 기능 부전 상태로 만들어 한국의 주류 세력으로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이 진행되면 체제 교체로 나아가게 될 것인데 결국 국가·사회 최상의 게임룰인 헌법 개정까지 닿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범(汎)보수 진영이 결집해 앞으로 3년 동안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 대비하지 않으면 보수 정당의 축소는 필연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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