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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일반자료마당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17> 칠엽수

by 풀나무사랑 2014. 8. 21.

중앙일보] 입력 2014.07.19(토)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17> 칠엽수


칠엽수.jpg
덕수궁 석조전 옆의 마로니에 고목.
칠엽수 잎.
성게처럼 가시가 난 마로니에 열매.
칠엽수(七葉樹)는 프랑스 이름인 마로니에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파리 북부의 몽마르트 언덕과 센 강가를 따라 북서쪽으로 뻗어 있는 샹젤리제 거리의 마로니에 가로수는 유럽의 명물이다. 반 고흐가 그린 파리 풍경화 중에는 마로니에 그림도 여러 장 있다. 1887년에 그린 네덜란드 고흐미술관 소장 유화 ‘꽃이 핀 마로니에’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로니에와 칠엽수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이 고향인 ‘유럽 마로니에’, 일본 원산의 ‘일본 마로니에’는 칠엽수로 구분하는 것이 맞다. 수만 리 떨어져 자란 두 나무지만 생김새가 너무 비슷해 구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마로니에는 잎 뒷면에 털이 거의 없고, 열매 표면에 성게처럼 가시가 나 있다. 반면 일본 칠엽수는 잎 뒷면에 적갈색 털이 있고 가시가 없이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것은 대부분 일본 칠엽수다.

 칠엽수란 이름은 긴 잎자루 끝에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처럼 생긴 일곱 개의 잎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길이가 한 뼘 반, 너비가 반 뼘이나 되며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든다. 늦봄에 커다란 원뿔 모양의 꽃차례가 나오며, 꽃대 한 개에 100~300개의 작은 흰 꽃이 모여 핀다. 가을에는 크기가 탁구공만 한 열매가 달리고 세 개로 갈라져 한두 개의 흑갈색 둥근 씨가 나온다. 이 씨앗은 유럽에서 옛날부터 치질·자궁출혈 등의 치료약으로 사용됐으며 최근에는 동맥경화증·종창(腫脹) 등의 치료와 예방에도 쓰인다. 일본 칠엽수 씨앗은 사포닌 때문에 쓴맛이 강하고 독성도 있다. 옛 일본인들은 씨앗을 한 달 정도 물속에 담가두었다가 잿물에 삶아서 말린 뒤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마로니에는 덕수궁 석조전 옆에 자란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황제 자리를 강제로 순종에게 넘겨 준 고종은 덕수궁에 머물면서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12년 환갑을 맞이하자 고종에게 주한 네덜란드 공사는 마로니에 몇 그루를 선물한다. 헤이그 밀사 사건에 대한 위로 차원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이가 약 100년 된 두 그루의 마로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

 일본 칠엽수는 서울 동숭동의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자리, ‘마로니에 공원’의 나무가 처음이다. 1928년 서울대가 자리를 잡을 때 일본에서 가져다 심었다고 하니 올해 기준으로 86살인 셈이다. 따라서 마로니에 공원이 아니라 칠엽수 공원이 정확한 이름이다.

 마로니에는 서양인이 아끼고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다. 우리도 마로니에와 칠엽수를 가로수, 공원 등에 널리 심고 있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쳐 용인 민속촌에서 촬영한 역사극에서 초가집 옆에서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기도 하다. 눈으로 보는 어울림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무의 역사성도 중요한 한 부분이다. 나무도 있을 자리에 있어야만 값어치가 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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